햇수로 삼 년 만에 은희경이 새 소설을 선보인다. 95년 등단 이후 일 년에 한 권꼴로 새 책을 선보여왔던 작가라는 점에서 꽤 오랜만의 작품이라 할 만하고, 그만큼 이 소설에 시간과 공력을 들였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시간의 무게 탓일까, 이 작품은 기존의 은희경 소설과는 사뭇 다르다. 그의 이전 작품들이 경쾌함과 발랄함으로 다가왔다면, 이 소설은 산고의 무게 이상으로 무겁고 깊게 다가온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공들인 문장과, 그 문장들 사이의 긴장, 그리고 행간의 밀도 역시 깊고 치열해졌다.
"할 말은 어지간히 한 것 같다"는 작가의 말은 은희경 소설세계의 새로운 전환점을 예고한다. 등단 이후 10년, 내내 삭이고 벼려온 삶의 무게가 묵직하게 전해지는 이번 신작은, "타인"이 아닌 그녀 자신에게 "말걸기"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전작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냉소를 거두고 자기 삶을 직접 마주 대하며 쓴 글인 만큼 작가의 아픈 성장통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1959년 전북 고창에서 출생했고 전주여고를 거쳐 숙명여대 국문과와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근무하였다.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의 고독과 내면적 상처에 관심을 쏟는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하여 젊은 작가군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등단 3년만인 1998년에 『아내의 상자』로 제22회 이상문학상 수상하면서 소설가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한국문학번역원 비상임이사(제4대, 임기3년), 문화관광부 한국문학예술위원회 문학위원회 상임위원, 미국 워싱턴대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30대 중반의 어느 날, `이렇게 살다 내 인생 끝나고 말지` 하는 생각에 노트북 컴퓨터 하나 달랑 챙겨 들고 지방에 내려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은희경의 인생을 바꿨다.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나 알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자, 산사에 틀어박혀 두 달 만에 을 썼다. 이 작품이 제1회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하면서 필명을 날리게 되었다. 한 해에 신춘문예 당선과 문학상 수상을 동시에 한 작가는 1979년 이문열, 1987년 장정일 이후 처음이었다. 또한 1997년에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로 제10회 동서문학상을, 1998년에 단편소설 『아내의 상자』로 제22회 이상문학상을 수상, 2000년에 단편소설 『내가 살았던 집』으로 제26회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은희경은 등단한 다음 해부터 2년 동안 엄청난 양의 작품을 소화해냈다. 해마다 2000매 이상을 썼을 것으로 추측된다. 은희경 소설은 무엇보다 ''잘 읽힌다''는 것과 무척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뒤에는 단순한 유머가 아닌 진한 페이소스를 숨기고 있다
은희경 소설의 매력은 소설의 서사 진행 과정중 독자들 옆구리를 치듯 불쑥 생에 대한 단상을 날리는 데 있다. 그녀의 소설을 흔히 사랑소설 혹은 연애소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은희경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상투성'', 그로 인해 초래되는 진정한 인간적 소통의 단절"이라고 한다. 그녀를 따라 다니는 또 하나의 평은 ''냉소적''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사랑이나 인간에 대해 환상을 깨고 싶어한다.